주님 한 분으로 만족하여 온 세상을 그리스도의 향기로 가득 채운 하나님의 자녀 두 분의 이야기를 올립니다.
주일에는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올리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이들의 믿음의 행위를 통해 많은 세상사람들이 크리스천의 주일에 대해 궁금해 하게 되고, 그리고 크리스천이 목숨처럼 지키는 주일의 주인이신 하나님에 대해 궁금해 하게 되고,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기뻐하실지를 생각해 볼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조혜연 8단: 실력으로는 최강, 그러나 주일엔 대국하지 않습니다..
11월 광저우(廣州) 아시안게임에 바둑 국가대표로 선발된 국내 여류 최강 조혜연(25·고려대4) 8단이 ‘주일(일요일)에는 예배 이외에 아무 일도 해선 안된다’는 종교적 소신(기독교의 주일성수·主日聖守)에 따라 페어종목 출전을 포기해 논란이 될 것 같다.
국가대표 선수가 종교적 소신을 내세워 국제대회 종목 출전을 포기한 사례는 국내에서 처음이다.
조 8단은 27일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주일에 대국을 하지 않는다는 소신을 지켜왔고 아시안게임에서도 마찬가지”라며 “일요일에 경기가 있는 페어종목에는 출전을 안하지만 평일에 벌어지는 단체전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아시안게임 바둑에는 남녀 단체전과 페어 3종목에 금메달이 걸려있으며, 3명의 선수와 1명의 후보로 구성된 여자대표 중 조 8단이 최강자여서 실력대로라면 단체전과 페어에 모두 출전하는 것이 당연하다. 한국은 중국과 함께 강력한 금메달 후보다.
이와 관련해 바둑대표선수단 결단식이 거행된 26일 한국기원에서 C 9단이 후배인 조 8단에게 “일요일 대국을 안할거면 왜 대표선발전에 나와서 혼선을 주느냐”고 애정어린 책망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조 8단은 “선발전에 앞서 양재호(9단) 감독과 윤성현(9단) 코치에게 대표에 선발되더라도 ‘주일성수’는 지킬 것이라는 양해를 미리 구했다”고 말했다.
한편 양 감독은 “대표 선발과정에서 종교를 이유로 동등한 자격을 주지 않을 수는 없었다”며 “조 8단은 국내 최강자인만큼 단체전에서 좋은 성과를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달 중순부터 진행중인 훈련에서 조 8단은 페어훈련에는 참여하지 않고 단체전 준비에 집중하고 있다.
조 8단은 지난 2005년에도 마스터즈배 여자부문 결승전에서 같은 이유로 대국을 포기한 바 있으며 그해 제4회 정관장배 세계여자바둑최강전에도 출전 포기를 선언했었다.
에릭 리들: 육상 100미터 세계신기록 보유자가 400미터에서 금메달을 따게 된 이유는?
에릭 리들은 1902년 중국 천진에서 스코트랜드 선교사 가정에서 출생하였다.
중국 선교사의 자제로서 먼 거리를 걷고 달리던 습관이 있어서인지, 어린 시절부터 탁월한 육상 재능을 보이면서 스코트랜드에서 교육을 받았다.
에딘버러 대학에 입한한 뒤 본격적인 육상선수로서의 활동을 시작한 그는 당시 수년간에 걸쳐 스코트랜드는 물론이거니와 전 영국 단거리 육상대회를 모조리 휩쓸었으며 스코트랜드 국가대표 럭비팀에서 활약하기도 하였다.
에릭 리들은 영국대표로서 1924년 제 8회 파리 올림픽 경기의 금메달 후보였다. 그러나 100 m 경기 일정이 발표되었는데 첫 예선일자가 7월 6일 주일 오후 3시와 5시였다.
그는 그 일정표를 보자마자 "저는 주일에는 안뜁니다." 라고 단호한 결정을 알렸다.
그의 그런 결정은 그의 주일 성수를 위한 자기 희생적 결정이었으며 주일은 주님의 날이므로 주님을 위한 일을 해야 한다는 신앙의 표현이었다.
에릭 리들의 100 m 출전 포기를 들은 영국 전체의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그를 가리켜 "편협하고 옹졸한 신앙인",
"신앙을 소매 끝에 달고 다니는 신앙심 깊은척 하는 위선자",
"조국의 명예를 버린 위선자" 라고 비난하였다.
그러나 에릭 리들은 100 m 예선 경기를 하던 7월 6일 주일에는 스콧츠 커크(Scats kirk) 장로교회에서 간증 설교를 하였다.
그 날 에릭 리들은 경기장에 나가 동료 선수들을 격려하는 일도 하지 않고, 평소처럼 주일을 교회에서, 성도들을 위해서 온전히 하나님께 드렸다.
100m 경기에서는 영국의 헤롤드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의 기록은 에릭 리들보다 약간 뒤졌었다.
에릭 리들은 기쁜 마음으로 헤롤드의 우승을 축하해 주었다.
하나님은 에릭 리들을 버리지 않으셨다.
에릭 리들은 자신의 주종목이 아닌 200 m에서 동메달을 땄고, 400 m 에도 출전하게 되었다.
그런데 사실 400 m 에서는 다른 선수들의 들러리였다.
예선에서만도 스위스의 '임바흐', 미국의 '피치' 같은선수들은 세계신기록을 세우면서 우승후보로 각광을 받았었다.
드디어 결승의 날이 왔다.
에릭 리들은 신들린 사람처럼 첫 코너를 돌았다. 경기를 지켜보던 전문가들은 "에릭이 저런 속도를 유지하다가는 도중에 쓰러져 죽을지도 모른다" 고 불안함을 표현하였다.
에릭 리들은 임바흐, 피치 등 우승후보를 제치고 47초 6이라는 세계신기록까지 세우면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가 결승전에 출전할 때 담당 안마사가 쥐어준 쪽지가 응답되었던 것이다.
<구약에 이런 글이 있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나도 존중하리라", 최선의 영광이 있기를 빌면서>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사무엘상 2장 30절 말씀)
그는 처음 400 m 우승의 비결을 묻는 기자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처음 200 m 는 제 힘으로 최선을 다했고,
나머지 200 m 는 주님의 도우심으로 빨리 달릴 수 있었습니다."
그는 주일은 자기를 위한 날이 아니고 주님을 위한 날이라는 사실을 삶으로 설교한
위대한 신앙인이었다.
올림픽 경기로 국가적 영웅이 되었지만, 에릭 리들은 하나님과의 헌신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모든 영광을 버리고 선교를 위해 중국으로 갔다.
그 이듬해 그는 영웅으로서의 모든 영광을 내던진 채 그는 아버지와 형의 뒤를 이어 24세의 젊은 나이로 중국 선교사로 떠났다.
그는 운동선수의 화려한 명성이 중국의 무지한 농부 한 사람을 구원하는 것에 비할 것이 못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었다.
리들은 12년 간 톈진에서 교사로 봉사하며 복음을 전했으며, 그 후 7년 동안 산둥 반도의 곳곳을 다니며 농촌 지역에서 전도를 했다.
마지막으로, 2차 세계대전 이 끝나기 전 몇 년 간 1,800명의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일본군 치하 웨이시엔의 수용소에 갇혀 지내며 타인들을 격려하는 삶을 살았다.
그리고, 그의 나이 44세때인 1945년 뇌출혈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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