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영정사진은 제가 골랐습니다. 찡그린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웃는 것도 아닌 아버지의 얼굴이 담긴 그 영정사진을 보며 친척 중 한 분이 제게 그랬습니다.
"아니, 좀 활짝 웃는 얼굴로 하지 그랬어?"
일 리 있는 지적입니다. 그러나 저는 아버지에게 아니 더 정확히 말해 지난 몇 년간 치열하게 암과 싸우신 아버지에게 활짝 웃는 얼굴은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아버지가 그 기간 중 항상 찡그리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아버지는 많이 웃었고 또 많이 즐거워도 했습니다.
또 누구는 그랬습니다.
"왜 하필이면 저 사진을 골랐어? 저 사진을 보면 눈물이 나와서 견딜 수가 없어."라고요.
누 군가의 얼굴이 나로 하여금 울도록 한다면 그 사진이야말로 그 사람을 가장 잘 표현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내가 눈물 흘리는 그 순간만큼 나 자신과 상대에게 진실한 순간은 없습니다. 진실을 끄집어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또 하나의 진실 뿐이라는 점을 기억한다며 나로 하여금 울게 하는 사진이야말로 가장 진실한 사진이 아닐까요?
이 사진을 보고 아마도 누군가는 아버지가 희미하게 웃고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또 누군가는 그가 울음을 참고 있는 듯이 보인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 두 가지가 다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진을 찍는 순간 아버지의 마음에 무슨 생각이 지나갔는지 알 길은 없습니다. 그러나 카메라 앞에 선 아버지가 당신의 본질을 드러내는 한 생각을 품는 그 순간을 카메라는 놓치지 않고 잡아냈습니다.
사 진을 즐겨 찍으시던 아버지는 어떤 한 순간의 기막힌 장면을 찍기 위해 몇 시간의 수고를 아끼지 않곤 했습니다. 한번은 사슴인가요? 무슨 동물이 나오는 한 순간을 찍기 위해 몇 시간 동안 힘든 포즈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중 그의 마음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도대체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거지? 그깟 동물 한 마리 찍기 위해 몇 시간 동안 내가 이렇게 용을 쓰고 있다니. 내가 언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이토록 힘든 자세에서 몇 시간이고 땀을 흘린 적이 과연 있었던가?"
이 생각이 스치는 순간 아버지는 그 날 사진찍을 기분을 완전히 잃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아버지는 곧장 장비를 챙겨 사슴을 기다리던 발길을 미련 없이 돌려 산을 내려왔습니다. 아버지에게 자신이 찍은 수많은 사진들 중에서 스스로 100% 만족한 사진은 하나도 없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는 자신을 향한 카메라의 렌즈에게 그만 자신의 본질을 그대로 노출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카메라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카메라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웃으면서 또한 동시에 울고 있는 아버지의 얼굴을 필름에 새겼습니다.
그렇습니다. 영정사진 속 아버지는 분명 울고 있습니다.
아 버지는 폐암 진단을 받은 2006년 이후 물론 말할 수 없는 육체적 고통을 감내해야 했지만 또한 동시에 영적인 부분에서 많은 생각을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설교를 들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아버지는 항상 설교 전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뒤에 설교하는 나를 감추시고 오로지 이 설교를 통해 예수님만 드러나도록 해 주소서."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과연 자신이 목회한 그 기간 내내 정말로 옥한흠이 아닌 오로지 예수님만이 드러났는지에 대해 은퇴 후 그리고 암과 싸우기 시작하면서 아버지는 본격적으로 성찰하기 시작하신 듯 합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아버지의 답은 '예수님이 아닌 목사 옥한흠이 더 많이 칭찬받고 드러났다.'라는 뼈아픈 자성이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그 사실이 엄연한 실재가 되기 시작한 몇 년 전부터 아버지는 하나님 앞에 가는 그 날을 기대하면서 또한 동시에 걱정했습니다. 그는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받을 상이 별로 없을 거야. 난 이 세상에서 너무 칭찬을 많이 받았어...."
아마도 아버지는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실까봐 두려워하신 것이지요.
"이 봐~ 너, 옥한흠, 너는 세상에서 이미 많이 유명하고 누릴 것 많이 누렸지? 내 아들 예수가 누릴 것도 다 가져가서 너가 누렸으니까 천국에서는 그냥 평범하게 살아!"
어머니 역시 입관 예배에서 이렇게 증언하셨습니다.
"평소 옥 목사는 '하나님은 나를 너무 과분하게 쓰셨어, 그래서 내가 이 땅에서 너무 과대 포장되어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두렵기만 하다’라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사 진 속 아버지가 울고 있는 이유는 이 외에도 하나가 더 있습니다. 아버지는 무엇보다 나날이 회사처럼 운영되는 교회를 보며 가슴 아파했습니다. 무엇보다 세상의 공식 아니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자본주의'의 공식이 그대로 적용되는 교회를 보며 가슴을 치곤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교회들이 그렇게 된 데에 누구보다 자신의 잘못이 크다고 자책했습니다. 아버지가 비록 각종 교회 성장 프로그램들을 가져다 쓰며 교회를 인위적으로 불리려고 애 쓴 적은 없었지만 그는 자기 자신부터 큰 교회를 맡았던 목사의 한 명으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비록 아버지는 '교회 갱신 협의회'를 통해 각종 비리가 난무하는 교회 선거 속에 작지만 의미있는 '제비뽑기'와 같은 제도를 도입해가며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세속화의 그 큰 물결을 결코 소수의 힘만으로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사진 속 울고 있는 아버지의 얼굴은 오늘날 교회를 보며 가슴찢는 그의 마음을 너무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진 속 아버지는 울고만 있지 않습니다.
그는 희미하지만 분명히 웃고 있습니다.
그 는 스스로를 바라보며 울고 있지만 또한 그런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해 웃고 있습니다.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예수님, 조만간 자신을 품에 안고 영원한 안식과 평안을 주실 그 예수님을 곧 만날 생각에 그는 웃고 있습니다.
세 상으로부터 조롱받고 나날이 더 '우리만의 섬', '우리만의 리그'으로 전락하는 교회를 보며 그는 가슴을 찢지만 결코 절망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지금도 교회 곳곳에는 아버지가 땀과 피를 쏟아 양육한 평신도들이 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아버지가 목이 터져라 외치던 '광인론'에 감격해 제자훈련에 목숨을 건 수많은 동역자들이 있습니다. 소명자는 실망할지는 몰라도 결코 절망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던 아버지와 동일한 심정으로 지금도 쓰러져가는 교회의 기둥을 자신의 온 몸으로 지탱하며 주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하나님이 남기신 그의 백성들이 이 땅에 여전히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영정사진 속의 아버지는 지금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들....잘 할 수 있지? 내가 없어도 잘 할 수 있지?"
지금 이 순간 이 사진을 다시 한번 자세히 들여다보세요.
아버지의 이 음성이 분명히 들릴 것입니다.
제 귀에 들리는 이 음성이 여러분의 귀에도 들릴 것입니다.
작지만 또렷하게, 희미하지만 생생하게 말입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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