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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8월 13일 금요일

웰빙

인터넷검색중, 2007년 홍콩한인회지에 올렸던 칼럼인데 제가 썼지만 이름이 붙어 있지않으면 제가 쓴 글인지도 모를뻔 했습니다. 옮겨봅니다.
http://kra.hk/new/home/kra/bbs.php?id=kranews&groupid=&where=&keyword=&ikeyword=&sort=hit&orderby=desc&newwin=&category=&how=&p=81&s=&recnum=&q=view&uid=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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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웰빙이라는 말이 유행한지 좀 되었습니다. 외국에 살다보니 한국에서 유행하는 말의 뜻을 처음에는 잘 몰라 그 뜻을 파악하기까지 시간이 걸렸습니다만 결국 "잘 먹고 잘 살자!"라는 뜻으로 그 말을 사용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잘 먹고 잘 사는 일은 인생 최대의 문제입니다. 예수님도 제일 큰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두번째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네 몸"에 대한 사랑을 강조하셨습니다. 몸을 제대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인생의 진리를 체득한 사람이라는 말이지요. 또 자기의 몸을 제대로 사랑할 줄 알아야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몸을 사랑하시길 바랍니다.




'몸을 사랑하는 것'은 너무 쉬운 일인듯 보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쉬운 일이라면 특별히 강조할 필요도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웰빙'이 강조된다는 말은 '웰빙'이 쉬운 것 같아도 좀 신경써야 얻을 수 있는 것이란 말입니다. 우리의 몸을 제대로 사랑하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웰빙'을 강조하면서 선전하는 것들을 보면 실제로는 우리의 '웰빙'보다는 살면서 가지고 있는 수많은 스트레스중에 또 다른 스트레스를 더하게 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어떻게 하면 몸을 사랑하는 것입니까?



먼저, 쉬어야 합니다. 우리의 몸은 쉬는 것과 일하는 것이 적절하게 비율을 맞추며 살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쉬기만 한다고 몸을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일만 한다고 몸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엿새 동안 힘써 일하고 일주일의 하루를 안식할 때 최대의 컨디션을 발휘하게 되어 있습니다. '쉰다'는 것과 '논다'는 것은 다릅니다. 사람들은 엿새 동안 일하고 주말은 놉니다. 놀고나면 또 피곤하기 때문에 쉬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미 쉬어야 할 시간을 놀아버렸습니다. '일'하는 것과 '노는 것' 때문에 '쉬는 것'을 잃어버립니다. 그러면 그것은 우리의 몸을 위하는 것이 아닙니다. '안식'해야 할 때 '오락'을 구하지 말라는 말이 바로 이러한 의미인 것입니다. 우리를 쉬지 못하게 하는 이유를 자세히 생각해보면 일 때문만이 아니라 쉬어야 할 시간을 '노는 것'으로 때워버리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를 쉬지 못하게 하여 우리의 몸을 상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의 욕심입니다. 욕심은 몸을 돌아보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를 바쁘게 해서 몸을 혹사하게 만듭니다. 우리의 생활이 복잡하도록 해서 여유가 없게 합니다. 욕심은 우리의 몸보다도 명예를 사랑하게 합니다. 명예를 위해 몸을 혹사하게 하고, 소유를 위해서 몸을 혹사하게 만듭니다. 평수를 조금만 줄이면 평안이 찾아옵니다. 그러므로 몸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줄여야 할 것은 줄여야 하고 끊어야 할 것은 끊어야 하고 버려야 할 것은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의복 때문에 몸을 망칩니다. 좋은 옷 입기 위해서, 명품족이 되기 위해서 몸을 망치도록 일하는 것입니다. 망가진 몸 위에, 망가진 영혼위에 명품을 걸치면 무엇이 유익하겠습니까? 몸이 의복보다 중요하고, 영혼이 의복보다 중요합니다.



또 한 가지 우리의 몸에 극악한 해독을 끼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미움입니다. 아무리 잘 먹고, 잘 쉬고, 욕심을 버려도 마음속에 미움이 있으면 몸이 상하게 됩니다. 사실 이것이 우리를 지배하면 쉬지도 먹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미움을 풀고, 용서하는 것은 그 누구보다도 자기를 위한 것입니다. 'The End of Spear'라는 영화는 한 원시부족이 '창'을 의지하고 그 '창'으로 인근의 원수와 같은 '족속'을 향해 그 '창의 끝'이 날카롭게 갈려 있을 때 그 원시부족이 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멸종해 가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마침내 사랑으로 원수를 향한 그 '창'을 내려놓을 때 평화가 누리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가장 자기 몸을 위한 것은 창을 내려놓았을 때 얻게 됩니다. 미움의 창끝을 부서뜨릴 때 살게 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것은 원수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몸을 위하는 것은 단순히 웰빙마크가 붙은 상품을 구입하는 것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재조정되어야 하는 문제입니다. 웰빙하시는 새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조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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